[2012.12.17] 그대를 믿습니다.

도종환 | 2012.12.17 13:18 | 조회 2139

지난 토요일 저녁 광화문 집회에서 투표율이 77%를 넘어서 대선에서 승리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사회자 탁현민 교수의 질문에 조국교수는 63빌딩을 걸어서 올라가겠다고 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 선생은 등단 50년 기념 작품 1천 권씩을 20대, 30대에게 쏘겠다고 했습니다. 안경환 교수님은 77번 큰절을 하겠다고 하셨고, 정혜신 박사님은 안철수 지지자 100명에게 치유 상담을 해주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말춤을 추고 막걸리도 한 잔 쏘겠다고 했습니다. 탁교수가 내게 물었을 때 나는 박근혜의 벽, 수구 보수의 벽, 이념의 벽, 차별의 벽, 불균형의 벽을 넘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을 뿐 약속은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2,30대 젊은이들이 투표에 많이 참여하여 대선에서 승리하게 되고, 광화문에 모였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거나 춤을 출 때 나는 얼굴을 파묻고 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고마워서 울고, 하늘이 아직 이 나라를 버리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울고,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춤을 추거나, 술잔을 높이 들고 노래하거나, 그 술값을 내가 다 내겠다거나, 시집을 선물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못했습니다.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 이긴다는 생각을 하면 나는 환호성보다 눈물이 먼저 날 거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지난 5년은 너무 가혹하였으므로, 절망의 시대, 야만의 시대였으므로, 수십 년을 던져 이룩한 것들이 모조리 무너지고, 후퇴하고 말았으므로 그것들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참으로 다행스러워 나는 눈물을 닦던 두 손을 모아 감사의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함께 해준 국민들에게 감사하고, 현명한 선택에 감사하고, 하늘에 감사하고, 대한민국의 운명에 감사하다는 기도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현명한 선택을 한 분들이 승리할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역전했다는 보도도 몇 개가 있지만 아직도 지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정조임금(1752-1800)이 돌아가시고 난 뒤 200여 년 동안 개혁세력이 승리한 건 4.19혁명이후 잠깐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이 전부였습니다. 나머지 기간은 보수 세력이 이 나라의 주류였습니다.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도, 남북이 분단되고 오랫동안 군부독재가 이어질 때도, 그들은 주류로 살아왔습니다. 그들이 다수이고 민주개혁 진영은 다수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류 보수 세력을 이기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이길 때는 39만 표, 57만 표 정도로 겨우 이기고, 질 때는 530만 표 차로 집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회 체제를 바꾸고 개혁을 한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길로 가야 합니다. 그 길이 가치 있는 길이므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이므로, 서로 나누고 도와가며 상생하는 공동체를 회복하는 길이므로, 돈보다 사람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이므로,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므로, 화해하고 용서하고 소통하고 통합하며 사는 길이므로 어려워도 그 길로 가야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의 한 사람의 현명한 선택이 중요합니다. 윤여준 전 장관님 말씀대로 현명한 선택을 할 줄 아는 것도 능력입니다. 사람을 알아보는 것, 올바른 판단력 이런 것이야말로 중요한 능력입니다.

 

나 한 사람 투표한다고 뭐가 달라지겠냐고 말씀하지 마세요. 꽃 한 송이가 피어 있으면 빈터가 아름다운 곳으로 바뀌지 않습니까? 과꽃이든 들국화든 몇 송이만 모여 있어도 꽃밭이 됩니다.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데 내가 왜 투표를 하느냐고 하지 마세요. 눈여겨 보아주지 않는 개울물이 모이면 강이 되고 거대한 바다를 이루지 않습니까? 개울이야말로 바다의 시작이요 출발이며 핏줄입니다. 내가 투표 안 한다고 무슨 일이 생기느냐고 하지 마세요. 그물코는 한 곳만 끊겨 나가도 그리로 모든 것이 빠져 달아납니다. 내가 투표권을 가진 국민이라는 긍지를 지니고 있어야 국가가 국민을 존중합니다.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하고 섬기게 해야 합니다. 나라가 청년을 두려워해야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들게 됩니다. 현명한 선택을 하실 그대를, 이 나라 국민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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